고향... 하면 언제나
코끝 찡한 아련함과 푸근함으로 마음의 위로와 안정을 가져다 줍니다.
매년 한두 차례는 고향을 다녀 온다 지만
고향을 떠나 온지 바뀐 강산 만도 네번을 넘으니......
소싯적의 아련함만 가슴속에 남아 있지요.
2019년 추석 ......
몇년 만에 한가위날 시간을 내어
고향의 형님댁을 찾습니다.
고향마을 입구의 300년된 느티나무
언 제 : 2019년 9월 12일 ~13일(목 ~ 금) 날 씨 : 맑음 기 온 : 12일 제천 14:00 19.8℃
누 구 랑 : 나 혼자
어 디 를 : 충북 단양군 단성면 북상리
13일 아침차례를 지내고 마을을 한바퀴 둘러 봅니다.
마을어귀에 걸린 현수막 - "반겨 주심에 감사 합니다"
마을입구에 뱅골로 건너가는 다리가 새롭게 건설 되어 개통을 기다리고 있네요.
마을과 뱅골사이를 흐르는 단천을 건너는 다리는
예전엔 징검다리(돌 다리)가 놓여져 있었고.
내가 고향을 떠난 뒤 콘크리트로 수면 가까이 낮게 다리가 놓여 졌었지요.
내 어린시절..... 조개 발이 달린 지개를 지고 짐을 져 나르시던 어른들의 모습과
개구장이 시절 검정 고무신에 다리를 뛰어 건너며 놀던 내모습이 어른거리고....
장마에 홍수가 날 때에는 다리가 흙탕물로 무섭게 넘쳐 흐르던 그림들이 떠오릅니다.
신설된 다리에 올라 바라보는 느티나무 고목이 즐비하게 늘어선 마을앞 냇가의 풍경
다리위에서 건너다 보는 마을풍경
소백산 자락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단천과 아랫부락 북하리 방면의 냇가풍경
다시 마을앞 냇가로 올라갑니다.
300년 이상된 마을의 수호목 느티나무(단양군 보호수로 지정됨)
지금은 이렇게 도로가 개천가로 뚫려 있고 현대식 으로 마을 회관이 지어져 있지만
느티나무 뒤로 보이는 현재의 마을회관이 있는 앞쪽 자리엔 한옥으로된 공회당이 있었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동민들이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곳으로 사용 되었었답니다.
느티나무 아래 승용차가 있는 왼편으로는 서낭당이 있었는데.....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며 시범부락으로 지정이 된우리부락엔 개혁의 바람이 불었고......
마을 어른들의 반대에도 불구 뒷골 샘터 아래 밤나무밭 아래로 이전이 되고
마을엔 새마을 노래가 울려퍼지고 마을의 돌담들이 걷혀지고 주택개량과 소득증대 사업으로 잘 사는 부락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시절 공회당 주변은 우리들의 놀이터 였고.....
'동네가리' 마을 행사때엔 집집마다 음식을 내어놓고 마을의 잔치가 벌어지곤 하던 곳으로 지금도 그 그림이 선명히 떠 오릅니다.
잔칫날엔 국수와 막걸리등 음식들이 나눠지고.........삼색천을 두른 마을 어른들의 신명나는 풍물놀이......
상모를 돌리고 꽤가리와 장구의 신명나는 가락..... 동네 어른들의 흥겨운 춤사위 .....
두팔을 들어 흥겹게 춤추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있는 듯한 환영이 지나 갑니다.
※동네가리 - 한해동안 고생한 동네 이장에게 주민들이 모곡을 모아 사례를 하던행사로 이날은 집집이 음식도 함께 내어 동네 잔치를 벌임
그리고 이 느티나무는 단오에는 그네를 매어주고..... 마을의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동네어른들의 쉼터가 되며 대보름에 한번씩 서낭당에서 올려지는 동제를 받으며 대를이어 내려오는 마을의 수호신 역활을 맡아 왔었지요.
느티나무를 지나 개천가로 내려 갑니다.
옛적 이곳 개천 변의 느티나무 아래는 지명이 따로 있었던 곳
'개자리'- 물이 물흐름이 완만하고 얕은 곳이며 느티나무 아래로 까칠까칠하고 펀펀한 암반이 삐죽 삐죽이 나와 있던곳
낮에는 동네의 여자아이들이 목욕을 하고 (밤에는 여자 어른들이)마을의 아낙들이 나와 큰 빨래를(이불 등)하던곳.....
여름밤 이면 동네어른들이 횃불을 들고 고기잡이를 하여 천렵을하고...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던곳....
중학생시절 친구들과 형님들의 천렵을 따라하다 (술을 처음 먹음) 친구가 정신을 잃어 온동네가 난리가 났던 일....말썽쟁이 또래로 찍힘
그 개자리가 이제는 이렇게 새로운 축대도 보완이되고
콘크리트로 포장이 되여 여름엔 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야영장소가 되지요.
이곳은 '수영목'
'수영목'은 개자리 조금 윗쪽에 바위들로 둘러 싸인 작은 소
이곳은 동네의 남자아이들과 남자 어른들이 목욕을 하는곳.....
어린아이들이 처음 수영을 배울때는 가장자리에서 동네 형들이 가르치고
또 그 아이가 자라서 또 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던 곳....
하얗게 물보라가 일어나는 곳을 건너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첫 수영을 배우던어린 나.
물보라가 이는 건너편 바위에서 멋지게 다이빙을하던 동네형들을 따라 연습을 하곤 했었지요.
그리고 사진 하단의 펀펀하게 경사진 바위는 목욕을하다가 체온이 떨어지면 햍볕에달궈진 바위에 몸을 기대어 데우던 사연많은 바위....
이곳이 우리 친구들이 알몸으로 수영을 하고 놀며 성장하던 주요 무대......
지금은 제방도 겹으로 쌓이고 논바닥 이었던 길이 있는 언덕
예전 이길은 논두렁 이었었고 지금은 충주댐 수목지역사람들이 이주를 하며 이렇게 도로가 나고 주택가가 되었답니다.
길 위에서 내려다 보는 수영목 (예전 이곳은 금녀의 구역....)
마을 윗쪽의 다리에서 물고기 잡이 놀이터의 추억을 간직한 단천을 내려다 봅니다.
다리 상류의 죽령 방면의 풍경
길을 따라 앞골 마을로 들어갑니다.
앞골 마을의 샘터 - 동네의 상수도가 만들어지기전 동네사람들이 물을길어다 먹던 샘터요 .빨래터가 있던곳.....
대보름 동제가 있기 한달 전 부터는 발을 쳐서 우물을 덮고 금줄을 쳐 정갈하게 유지하던 마을샘물
고향집의 담장길을 돌아 뒷동산 '자라목'으로 올라 갑니다.
※자라목 - 동네 동산에서 자라의 목 처럼 빠져나와있는 바윗등
자라목은 우리들의 어린시절 전쟁놀이의 무대였고....
한점재 골짜기 밭으로 일하러 가신 엄마 아버지를 기다리는 장소였고....
내 할아버지가 직장에 나간 손자가 오나 늘 마을길을 내려다 보며 기다리던 언덕.....
노란선 윗쪽은 예전엔 모두 논 이었었음
마을회관이 있는 방면의 마을풍경
자라목 바윗등에 서서 옛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고향을 떠나 객지로 나간지 40년 하고도 3년...... 강산이 4번 바뀌는세월....
이제 반백으로 변한 그때의 소년은
조용히 옛동산의 노래가사를 읊조려 봅니다.
지금은 옛 추억을 함께 공유할 일곱의 친구들 중
셋이나 이세상을 떠나고 곁에 없다는 점이 서글프답니다. 감사합니다.
옛동산 노랫말